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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 국제칼럼]트럼프와 역대 최대 ‘셀프 감세’

2017년 1월22일 대통령 취임식 이후 ‘미국 우선주의’가 당장 가시화될 것처럼 오만하고 득의양양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심각한 정치 위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취임 9개월이 지난 현재 의회를 통과한 주요한 법안은 겨우 두서너 개에 불과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는 40%의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 언론의 다수가 지난주(9월 24~30일)를 ‘트럼프 최악의 주간’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3대 정치적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첫째, 공화당의 앨라배마 상원의원 경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한 후보가 낙선하고, 몇 주 전 백악관에서 쫓겨난 스티브 배넌이 밀어준 후보가 당선, 트럼프의 골수 지지 기반이 반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둘째, 대형 허리케인 마리아가 휩쓸고 간 푸에르토리코의 자연 재앙에 대한 지난 10여 일간의 대응 조치가 너무 느리고 부실하여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이재민의 분노와 절망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연방 정부의 무능한 대응으로 지금 우리는 죽어갑니다”며 긴급 구조를 호소한 산후안시장에게 ‘지도력 부족’이라고 비난한 트럼프에 대한 국민의 질타가 대단하다. 셋째, 최소 26차례에 걸쳐 전세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여 수십만 달러의 국민 혈세를 낭비한 톰 프라이스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격노한 트럼프의 예고된 해임을 피하려 전격 자진사퇴했다. 이 같은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6일 대선 때부터 공약해온 ‘역대 최대 감세 정책’의 내용을 구체적인 수치 없이 대략적인 ‘큰 틀’과 방향만으로 발표했다. 오바마케어 폐기와 대안 법안이 상원의 문턱에서 완전히 좌절된 현시점에서 “국민 모두에게 감세 혜택이 돌아가고 GDP 성장이 6%까지 오른다”고 주장하는 이 세제 개혁의 입법화만이 큰 정치적 위기에 빠진 트럼프의 구세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행정부가 의회에 대출한 세제 개혁안은 구체적인 수치 없이 단순히 개혁의 방향과 ‘큰 틀’만을 담은 겨우 9페이지의 짧은 제안서이기 때문이다. 이 제안서는 앞으로 적어도 2~3주 정도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과 하원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단일 세제 개혁 초안으로 성립될 것이다. 앞으로 찬반 양측이 의회에서 치열하게 논의할 것으로 예측되는 세제 개혁안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다음 5가지이다. 1)세제 개혁안은 미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인가? 2)감세의 최대 수혜자는 톱 1% 고소득자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저소득자와 중소득층에 대한 감세 대책은 무엇이며 현재 선진국 중 최악인 소득 불평등이 더 심화할 위험은 없는가? 3)‘역사적인 감세와 면세’로 발생할 정부 세수 적자를 어떻게 막을 것이며, 늘어나는 정부 빚은 어떻게 줄일 계획인가? 4)주(州)와 지방 정부에 낸 세금에 대한 ‘공제’ 혜택을 폐지하려는 계획에 대한 국내 7대 주 정부의 반대가 극렬한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트럼프 본인과 가족이 세제 개혁의 최대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셀프 감세’라는 비난과 공직자 윤리와 사적 비즈니스 간에 발생하는 ‘이해 충돌’을 피할 길은 있는가? 등이다. 마지막 이슈는 도덕적 해이가 극심한 트럼프 가족과 행정부 고위 관리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우려가 크기 때문에 자칫 이번 세제 개혁의 의회 통과가 좌절할 수도 있다. 위의 5가지 이슈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것은 단연코 트럼프의 세제개혁이 ‘수퍼리치’만을 위한 감세 정책인가 여부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번 세제 개혁의 수혜가 극심할 정도로 불공평하다고 한다.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2018년에 소득의 제20분위(즉 소득 수준 0~20%) 가정은 60달러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60분위 가정은 660달러의 혜택을, 제100분위 가정은 8470달러의 혜택을 받는다. 그런데 소득 톱 1% 가정은 12만9030달러의 혜택을 받고, 소득 톱 0.1% 가정은 72만2510달러의 혜택을 받는다. 총체적으로 보면 세제 감면 혜택의 80%가 톱 1% 부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심한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할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하다. 결론으로 국민의 복지와 평등이란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셀프 감세’ 정책은 극적인 보완이나 수정 없이 올해 의회를 통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민주당 의원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온건파 의원도 이 ‘셀프 감세’ 법안 통과를 저지해야 한다.

2017-10-05

[박영철 국제칼럼] 연준(Fed)의 ‘달러 사재기’ 선언

“연준, 오는 10월부터 보유자산을 축소한다. 그리고 기준금리는 당분간 동결한다.” 지난 9월20일 연준(연방준비제도) 의장 재닛 옐런이 발표한 중요한 통화정책의 변화 내용이다. 다음 날 미국과 한국 등 주요 신문은 이 내용을 경제 지면의 머리기사로 뽑았다. 이 기사 제목에 관하여 존경하는 독자 한 분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용어들을 찾아보고 꿰맞추고 해봐도 산뜻하게 이해가 안 됩니다.”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는 심지어 경제학 교수들에게도 생소하고 혼란스럽고 이해가 쉽지 않은 주제이다. 왜냐하면, 미국 경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연준이 대차대조표에 표기한 자산(Assets)의 규모가 이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적도 처음이고, 이를 몇 년에 걸쳐 축소하려는 정책도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 정책은 그 경제적 의미와 중요성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살림살이에도 당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선 연준이 2008년 말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유일하게 가능했던 경기부양책으로 채택한 양적 완화(QE)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두 개의 비(非)전통적인 통화정책, 즉 양적 완화와 보유 자산 축소(shrinking Balance sheet)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적 완화정책은 침체에 빠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시중의 유동성(현금과 예금 등 인출이 쉬운 통화를 뜻함)을 늘리려 시중 은행에서 국채(T-bonds)와 장기주택담보증권(MBS) 등을 사들이면서 동시에 기준 금리는 0~0.25%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고 금리가 낮으면 소비자는 소비를 더 하고, 기업인은 투자를 더 한다. 그러면 침체에 빠진 경기가 조금씩 풀리게 된다. 반대로 연준의 보유자산축소 정책은 경기가 회복 수준을 넘어 과열하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시중의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즉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을 팔면서 동시에 기준 금리를 점차 조금씩(0.25%p 정도) 올리는 것이다. 그 결과로, 시중에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오르면 소비자는 지갑을 서서히 닫기 시작하고, 기업은 투자 계획을 줄여나간다. 잠정적인 인플레이션 위험도 사라진다. 이제 연준이 지난 6년 간(2009~2014) 시행했던 양적 완화 정책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던 리먼 브러더스가 2008년 9월 파산을 선고하면서 미국 경제의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경기부양책으로 연준은 2009년 1월28일 제1차 양적 완화 정책을 시작하여, 2015년 중반까지 세 번의 양적 완화 정책을 진행했다. 이처럼 연준이 세 차례의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국채와 장기주택담보증권 등을 사들이기 위해 시중에 푼 유동성은 무려 3조6000억달러가 된다. 즉 2009년 초 9000억달러이던 자산이 현재 4조5000억달러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중 국채 규모는 2조5000억달러, 나머지는 장기주택담보증권인데, 연준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잡힌다. 다시 말하면 연준의 보유자산이 3조6000억 달러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연준의 자산이 현재 4조5000억이란 사실이 왜 심각한 문제가 되는가? 왜 연준은 내년부터 보유자산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연준의 보유자산이 이처럼 많아 보기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시중에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이 풀려 있다는 뜻으로 경제적으로 건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무서운 경기 과열, 즉 인플레이션으로 변질할 폭발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답은 시중에 깔린 돈을 거두어들이고, 금리를 점차 인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준이 엊그제 보유자산 축소를 내년부터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이유이다. 이제는 이 같은 연준의 긴축통화 정책이 과연 성공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불행히도 이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다. 왜냐하면,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가 예상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그 부작용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는 자칫 지금 잘 살아나고 있는 미국 경기를 다시 둔화시킬 위험이 크다. 둘째, 연준의 점진적인 보유자산 축소가 과연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이를 억제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는 해외에 나간 미국 자본의 본국 귀환을 촉진하고, 달러 강세를 촉발할 위험이 크다. 그런 경우 미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은 더 떨어지고 무역 적자는 증폭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는 경제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뜻이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9-28

[박영철 국제칼럼] 한미FTA 폐기, 트럼프의 ‘충동적’ 전략의 민낯이다

지난 8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 간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의 첫 회담이 양측의 이견으로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추후 협의 일정도 정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에 화가 잔뜩 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들에게 “한미FTA 철수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고 워싱턴포스트(9월2일)가 보도하고,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그렇다. 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시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 후인 지난 6일 폭스뉴스와 로이터 통신이 “백악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고려를 당분간 중단한다”고 보도했다. 지난 20여일의 짧은 기간에 세계 경제 최강국인 미국과 세계 경제 15위인 한국의 중대한 통상 정책을 좌우하는 자유무역협정의 운명이 극과 극인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갔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국가주의적 고립주의 신념과 미국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다른 나라에 대한 경제적 ‘갑질’에 있다고 본다. 흔히 트럼프 대통령이 ‘비즈니스 협상의 귀재’라는 말을 듣지만, 튼튼한 이론과 지혜, 실전에서 쌓은 체험에 근간을 둔 국제적 외교와 통상 협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국가 지도자인 것 같다. 한미 FTA공동위원회 특별회기의 첫 회담이 추후 협의 일정도 정하지 못하고 깨진 이유가 무엇인가? 하기야 회담 전부터 불길한 조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회담 장소로 제시한 워싱턴 대신 서울을 관철한 한국 협상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라이트 하이저 대표가 며칠 전 시작한 NAFTA 협상에 매달리며 서울 회담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국제 통상 협상 전문가가 절대로 모자라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서울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회담 당일에는 한국 협상팀이 적어도 몇 주가 걸리는 ‘한미FTA 경제적 효과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당장 한미FTA 개정 협상을 시작하자’고 윽박지르던 미국 협상팀이 화를 내며 회담장을 나갔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약 1주일 후인 지난 9월2일 백악관 참모들에게 한미FTA 철수를 논의하라는 사려 깊지 못하고 ‘충동적’인 지시를 했다. 하지만 미 재계와 의회, 특히 안보 관련 고위 관료들은 이 같은 트럼프의 지시에 일제히 강력한 반발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중에서도 300만 개 이상의 기업을 대표하는 미국 최대 경제 단체인 상공회의소(USCC)의 톰 도너휴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외국에 빼앗긴 일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라지만, 한미FTA에서 철수한다고 해서 생기는 일자리는 단 한 개도 없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지시가 내린 다음 날부터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 상공위원이 한미FTA 폐기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백악관과 행정부의 국가 안보 및 경제 관련 고위인사들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메티스 국방장관, 그리고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 등이 트럼프의 협정 폐기 움직임을 저지할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 행정 고위관료들은 최근 북한의 제6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핵전쟁 위험이 임계점에 닿아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 정부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킬 우려가 있는 한미 간 무역 충돌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난 2주 동안 지속, 개정, 폐기를 오간 한미FTA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매우 복잡하고 절묘한 외교 및 경제 전략이 요구되는 질문 같지만, 이 질문에 대하여 실제로는 매우 간단하고 확실한 답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국제 외교와 통상 협상에 문외한인 트럼프의 충동적인 행동은 오히려 예측하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는 자신의 골수 지지자를 단합시킬 대중영합주의 선거 전략에 도움이 되는 한, 즉 “미국을 다시 경제 강대국으로 만들자”, “외국에 빼앗긴 일자리를 찾아오자”, “무역적자를 줄여야 산다” 등 경제 이론과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호 아래, 얼마 동안은(몇 개월 몇 년이 될지도 모를) ‘한미FTA 카드’를 자신의 오만과 고집대로 만지작거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한국의 대응은 어때야 하나?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따르면 된다. 즉 트럼프가 포기할 때까지 ‘졸지 말고 당당하게 대응’하면 된다. 왜냐하면, 한미FTA 협정은 지속하던, 개정되던, 심지어 폐기되던 손해가 큰 쪽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9-14

[박영철 국제칼럼]‘한국에 유리한 한미FTA 개정협상

지난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 간의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의 첫 회담이 양측의 이견으로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추후 협의 일정도 정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번 개정 협상이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중에는 논의조차 되지 않은 의제라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협상의 목적이 기존 한미FTA 협정의 개정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한국에 통보한 것은 외교적 ‘무례’와 ‘협박’에 준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고 곧 구성될 한국 협상팀에게 “협상에 당당히 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전 정권처럼 ‘미국 비위 맞추기’, ‘끌려가기’ 및 ‘굴욕적인’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간곡한 지시이다. 왜 첫 회담이 결렬되고 향후 협상의 전망은 어떤지를 분석·검토해 보자. 회담 시작 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회담 장소가 서울로 정해지면서 돌연 미국 측 대표로서의 방한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회담 당일에는 미국 측이 한미FTA 개정 협상을 정식으로 요구하고, 한국이 이를 ‘수용 불가’라고 못 박고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의 필요성’을 역으로 제안하면서 회담이 시작도 못 하고 끝났다. 왜냐하면, 미국대표단이 한국의 역제안에 대한 답을 귀국 후에 통보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아직 공식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즉 미국 측은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리는 한미FTA 개정 협정에 큰 관심도 없고, 최악의 경우 기존 한미 FTA 폐기도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아래 두 가지 이유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첫째,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멕시코 간의 NAFTA 협상에서 크게 고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첫 번째 이유는 미국 협상팀 중에 NAFTA 전문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몇 주 전 서울 방문을 돌연 취소한 미국 협상팀 대표 라이트하이저도 현재 이 협상에 몰입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NAFTA 개정 협상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 협상을 올해 안에 끝내려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2018년 7월 1일로 예정된 멕시코 대선 기간에 NAFTA 개정 협상이 ‘폭발적인’ 정치 현안으로 변질하여 미국 측에 불리하게 전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기능이 폭발 개연성이 높은 국내 문제로 거의 ‘혼란’ 상태에 빠지고 있다. 최저치 39%로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 특임 검사 뮬러가 속도를 내는 러시아 수사(Russia Probe), 백악관 웨스트 윙의 내부 권력 싸움과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 스티브 배넌의 전격적인 해임,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 간의 감정적인 충돌과 갈등, 9월 말로 다가오는 정부 부채 한도 연장과 정부 폐쇄 우려,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인 오마바케어의 폐기 실패, 슈퍼리치만을 위한 조세 개혁 법안의 정체, 샬러츠빌 인종주의 세력들의 난동과 폭력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양비론적 발언,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결정, 백인우월주의자인 애리조나 전 경찰청장 조 아파이오의 사면 등…. 수많은 사건이 트럼프의 행정 능력을 크게 마비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백악관의 대외 정책이 노련한 행정부 관료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미국 우선주의적인 독선과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에 좌우된다는 뜻이다. 물론자신의 골수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이고 정책이지만,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는 야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과 심지어 군부에서도 비난을 받으며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전망은 어떤가? 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고 본다. 최악의 상황인 기존 한미FTA의 폐지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온다 해도 크게 손해날 게 없는 상황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손자는 “적을 알라”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신도 잘 모르고 한국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 반대로 이제 한국은 ‘우리 자신을 다시 알게 됐고’ 동시에 ‘미국의 허점’도 제대로 파악하게 된 셈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이번 한미FTA 개정 협상에 ‘당당히 임하여’ 좋은 결과를 맺을 기회를 가진 셈이다. 당장 협상하자고 조를 필요가 없고, 협상이 재개되면 ‘한국 우선주의’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2017-08-31

[박영철 국제칼럼] ‘문재인 효과’와 가계 부채의 폭등

선진국 경제에는 대통령 ‘취임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효과는 대선 후 새 정권이 들어서면 경제 정책이 부양책으로 바뀔 것이라는 들뜬 기대감에 증권시장과 경제성장 전망이 온통 장밋빛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효과는 보통은 5, 6개월에 끝나지만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미국의 예로 ‘트럼프 효과’로 인해 미 증시의 3대 지수가 지난 대선 이후 평균 14%~18% 상승했다. 특히 증시 호황은 놀라울 정도이다. 지난 8월2일 다우 산업 평균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22,000p를 기록했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지난 5월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거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는 3% 중반대의 경제성장과 소득 양극화의 완화라는 쌍끌이 경제 목표 달성을 위한 과감한 재정투자(‘J nomics’)와 ‘경제민주화’ 정책을 동시에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발표 덕분에 지난 5월부터 한국의 증권시장에 ‘문재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증시에서 사용하는 코스피 지수(Korea Composite Stock Price Index, KOSPI)는 37년 전인 1980년 첫 개장일(1월4일)의 시가총액을 100으로 하여 상대적인 시가총액의 비율을 뜻한다. 1980년 100이던 코스피는 1989년 1000포인트를 기록했다가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 무려 28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12년 후인 2010년 2000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5, 6년간 박스권에서 머물다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 5월 드디어 2200선을 넘어섰다. 지난 8월 초 2450포인트까지 올라왔던 코스피는 8일 2394로 장을 마감했다. 5월 이후 코스피의 이같이 높은 상승률에 공헌한 다양한 요인 중 문재인 정부의 경기 부양책 공약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가장 컸다고 본다. 지난주 국제칼럼에서 검토한 미국 증시 호황의 ‘트럼프 효과’와 쌍둥이인 셈이다. 문제는 실물 경제에서는 아직 ‘문재인 효과’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 경제 정책의 효과는 보통 몇 개월, 또는 몇 년의 시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전임 정권(들)의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구조적으로 왜곡되고, 선진국 문턱에서 밀려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회복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본 한국 경제의 모습은 매우 초라하다. 그중 가장 시급한 문제는 폭발 직전의 가계부채 폭등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국 가계부채 규모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GDP 성장 제약과 금융 불안의 요소가 될 것이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6월)가 예상하는 가계부채의 우려되는 실상을 아래에 요약해 본다. 첫째,올해 말 한국 가계부채 총규모는 1500조원에 달하고, 가구당 빚은 7800만원, 1인당 빚은 2900만원이 될 것이라 한다. 둘째,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2.8%로 위험수위, 즉 임계치에 달한 선진국 6개국 중 하나이다. 가계부채 임계치란 너무 많은 돈을 빌렸다는 신호인데 국제결제은행(BIS)에 의하면, 선진국 가계부채의 임계치는 보통 75% 수준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경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2.8%로, 이 임계치를 훌쩍 넘어서 폭발 직전까지 와 있다는 뜻이다. 셋째, 가난한 ‘한계가구’ 즉 빚이 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이 가처분소득의 40%를 초과하는 가구 수가 최근 증가 추세에 있다. 2012년에 전체 가구의 12.3%, 2015년에 14.8%, 2017년에는 16%에 근접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한계가구의 반(44.1%)이 대출 상환 기간을 맞추기 어려운 실정이다. 넷째, 올해와 내년에는 미 연준(Fed)의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므로 향후 한국 개인 빚의 대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다. 가난한 서민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폐업 위험도가 폭등할 우려가 있다. 다섯째, 서민 가계부채의 유일하고 진정한 해결책은 가계 소득 증가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이 최근에 도입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등은 시의적절한 경제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근원적인 분배 정책, 예를 들면 부자 증세, 서민 복지 지원 등을 강화하는 과감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소득 주도’ 경제 정책이 성공해야만 한국의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8-10

[박영철 국제칼럼]증시의 랠리는 언제쯤 끝나는가?

국내외의 끔찍한 악재로 사면초가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미 국민에게 안겨준 유일한 선물은 거의 매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증권가의 초호황(Rally)이다. 따라서 최근 미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이런 증시의 랠리에 관련한 다음 두 가지 현안에 집중되고 있다. 이번 증시 호황을 가져온 요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공약 덕분인가? 이번 증시 호황이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뉴욕 증시는 지난 2009년 3월부터 2017년 6월까지 8년 동안에 무려 275%나 상승했다. 반대로, 같은 기간 미국 실질 GDP의 성장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증시와 실물 경제의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비동조(Decoupling) 현상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올해 뉴욕증시도 겁이 날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현행 1%~1.25% 선에 동결하기로 했다. 그 여파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만1891, S&P 500지수는 2477, 그리고 나스닥 지수는 6422 등을 기록했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 모두가 그날 증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이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이번 뉴욕증시 랠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헌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다시 말하면 소위 ‘트럼프 효과(Trump Effect)’가 사실인지 아니면 허상인지를 검토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증시에는 ‘트럼프 효과’, 즉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공약에 대한 주식 투자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기대가 주요 지수 상승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며칠 후인 지난 1월26일 다우지수가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2만을 넘어섰다. 그다음 날 트럼프는 “이제 다우지수는 계속 올라가기만 할 것이다”라는 트윗을 날렸다. 둘째, ‘MarketWatch’의 4월30일 기사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취임 100일 동안의 S&P500지수는 다음과 같은 증가율을 보였다. 1위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79.62%(1929년의 대공황에 대한 대규모 부양책인 공공산업 투자 덕분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9.2%, 부시 대통령(아버지)의 7.93%, 오바마 대통령의 7.51%, 그리고 다섯 번째 트럼프 대통령의 5.3% 순이다. 셋째, 지난주(7월26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뉴욕증시 3대 주요지수는 1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증가율을 보인다. 다우지수 14.22%, S&P 500지수 11.43%, 그리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 16.40% 등이다. 이는 같은 기간의 실물경제 성장률인 초라하기 짝이 없는 1.8%를 훌쩍 넘기는 거창한 금융 성과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보자. 이런 증시 호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할 것인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증시의 전망에 대한 낙관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선거 공약의 입법화가 좌절되거나 지연되면서 증시 폭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증시의 폭락 가능성에 대한 가장 신중하고 대표적인 비관론자는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예일 대학의 쉴러 교수이다. 쉴러 교수는 주식 시장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대평가된 것인지, 과소평가된 것인지, 아니면 적정 수준에 도달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소위 10년 ‘경기순환변동을 조정한 주가수익비율(CAPE)’ 지표를 개발하여,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생한 증시 폭락을 사전에 경고한 바 있다. 이 CAPE(쉴러 주가수익비율) 지표는 지난 10년간의 주식 평균가격(Prices)을 주당 평균수익(Earnings)으로 나눈 지표(PER)로 높을수록 증시가 고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쉴러 교수는 지난 7월 2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증시의 CAPE는 30배로 10년 평균치인 17에 비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이 30이란 수치는 미국 증시 역사상 단지 두 번 나타났다. 1929년 대공황 바로 직전의 증시 버블과 2000년의 닷컴버블 때이다. 30을 넘는 높은 CAPE와 10 에 근접한 소위 ‘공포 지수’라 불리는 변동성(VIX)지수가 동조하는 최근 증시는 너무 낮아 폭풍전야의 정적 같은 생각이 들어 ‘걱정스러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Lie awake worrying)’라고 말한다. 참고로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10 수준이다. 지난 2016년 11월 8일 이후 ‘트럼프 효과’를 크게 본 증시가 올겨울부터 서서히 하락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본다.

2017-08-02

[박영철 국제칼럼] 최저임금 16.4% 인상

모처럼 서울에서 날라온 반가운 경제 소식이다. 지난 7월2일 최저임금위원회가 가난한 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을 결정했다. 현행 시급 6470원에서 2018년에 7530원으로 16.4% 인상하고, 2020년에 1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라 한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이 지난 8년 동안 합의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사용자(기업가) 대표와 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의 전원이 표결에 참여하여 만들어 낸 ‘대타협’의 결과라는 중대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최대폭의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한 과정 및 그 경제적 파장을 검토해 보자. 이번 인상의 최대 수혜자는 496만명에 달하는 최저임금 노동자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내년 시급이 7530원으로 인상하는 경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은 평균 167만원, 사장의 수입은 187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시급이 1만원이 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월급이 사장의 수입을 초과할 것이라 한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이번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전형적인 ‘상충효과(Trade-Effect)’의 경우이다. 국민의 한 계층이 받는 수혜가 국민의 다른 계층이 받는 피해로 나타난다. 흔히 발생하는 경제 정책의 파급 현상이다. 이 상충효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이번 최저임금 인상을 ‘큰 틀’에서 이해해 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지난 7월17일 청와대는 “이번 최저임금의 역대 최대 인상폭 결정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득주도 성장으로 사람 중심의 국민성장시대를 여는 대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선언했다. 다시 말하면 “최저임금 1만원은 단순히 시급 액수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하며, 동시에 내년도부터 경제성장률도 더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첫째, 최저임금 인상 반대 측은 가장 심각한 부작용으로 기업의 전반적인 임금 부담이 급증한다고 주장한다.즉 최저임금을 올리면 전체 근로자 임금이 인상돼 기업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뜻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최저임금의 사업체 내 임금압축 효과’)에 의하면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저임금과 고임금 근로자 간 임금격차를 줄여 소득 불평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구체적으로 최저임금에 근접한 임금의 소폭 인상은 발생하지만, 최저임금보다 월등히 높은 임금은 오히려 하락하거나 상승폭이 둔화하였다는 주장이다. 둘째, 반대 측은 최저임금이 자유시장의 소위‘균형임금’보다 높을 경우, 기업의 고용 수요가 줄어 실업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 자료로 2017년 워싱턴 대학교의 논문(Jardim 외, NBER, N0. W23532)을 인용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시애틀 시의 경우 최근 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오히려 줄고 노동시간이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로, 사회의 중위 수준 임금의 절반을 밑도는 최저임금 수준의 인상은 고용감축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는 논문의 수가 훨씬 더 많이 발표됐다. 셋째, 이번 인상은 지난 5년간의 평균 인상률 7.4%를 크게 웃돈다. 따라서 초과분 9.0%p(16.4%-7.4%)의 부담을 지게 되는 생계형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을 정부가 직접 지원해야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 주 아래 세 가지 원칙에 의한 최저임금 인상 대책을 발표했다. 하나, 과거의 인상 추세를 벗어나는 인건비부담을 정부가 직접 지원한다. 약 3조원 규모의 재정 직접 지원과 카드 수수료 인하 등 행정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둘,고용이 줄지 않도록 한다. 셋, 경제 성장에 기여하도록 한다. 이런 정부의 지원 정책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 정의 측면에서 정부가 경제 정책 피혜자의 부담을 최소화 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최저임금 16.4% 인상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민주화와 소득 중심 국민경제라는 큰 프레임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의 성공을 기원한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7-27

[박영철 국제칼럼] 트럼프, G 20 그리고 글로벌 공동체의 균열

지난 7~8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다음 두 가지 국제 상황이 확인되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왕따’ 대접을 받은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1면 머리기사(7월 9일)의 제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상회담이 트럼프의 고립을 노출하다(Summit exposes Trump Isolation).” 다른 하나는 예측 불가능하고 고집투성이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주장으로 ‘글로벌 공동체의 균열’이 심화하였다는 사실이다. 정상회의가 끝나는 날,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은 “서방국가의 분열은 매우 우려할 상항에 도달했다. 이 분열을 넘기 위해서 세계화 추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 자유무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위의 두 가지 상황을 가장 적절히 구체화하는 이벤트가 바로 G20 정상회담 하루 전날에 체결한 ‘일본과 유럽연합의 경제동반자협정(JEEPA)이다. 지난 6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유럽연합(EU)의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독일에 온 세계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메이 총리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일본과 EU 간에 2019년 발효하기로 합의한 JEEPA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이 협상이 당사자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가져올 주요한 경제 및 정치적 영향과 의미를 검토하겠다. 우선 협정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보자. 하나, 경제 규모가 2위인 EU와 4위인 일본의 경제동반자 협정 체결로 세계 무역의 37%를 자치하는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 경제권이 탄생하게 됐다. 이번 협정으로 FTA 후진국이며 ‘폐쇄 경제’라는 오명에 시달리던 일본이 양자협정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FTA를 얻게 됐고, EU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FTA를 체결하게 됐다. 둘, 일본 언론에 의하면 이번 협정이 발효하면 엄청나게 큰 수출 증가 덕분에 일본의 GDP는 연 1% 이상, EU의 GDP는 연 0.76%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셋, 이 협정이 예상대로 2019년 발효하게 되면 일본과 EU 간의 전체 교역 품목 중 약 95%의 관세가 없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즉 일본과 EU 간 교역의 ‘자율화율’이 95%로 TPP에서 추진하던 관세 철폐율과 똑같다. 가장 중요한 관세 철폐나 축소 수혜품목은 일본의 경우 자동차와 가전제품이며, EU의 경우 농축산물 등이다. 현재 일본 자동차 수입에 대한 EU의 관세는 10%, 치즈는 29.8%이다. 자동차 수입 관세는 협정 발효 7년 후에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는데, 최근 정체에 빠진 일본의 유럽 수출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EU는 일본의 가전제품에 현재 최대 14%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즉시 관세를 철폐하고, TV에 한하여 5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와인은 양쪽 모두에서 관세가 발효 즉시 완전히 사라진다. 치즈, 파스타, 초콜릿을 포함해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시차를 두고 점진적으로 철폐된다. 이번 JEEPA 협정의 최대 피해국은 어느 나라인가? 한국과 미국이다. 한국은 2013년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2009년 30만 대에서 지난해 40만 대로 증가하고 현대차의 현지 생산도 지난 6년 동안에 세 배로 늘어났다. 한국의 가전제품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오래 전부터 일본에 개방 압력을 가해온 미국 농산물 분야의 대일본 수출이 심각한 경쟁력 상실로 큰 타격을 받게 되고, 미국의 자동차 분야는 EU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세계 주요 언론에 따르면, JEEPA는 세계 경제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 가장 강조할 사항은 유럽연합과 일본이 세계 교역의 ‘고립주의’를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또 하나 우려해야 할 상황은 미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상실하여 ‘주도권 공백’이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중국이 넘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누가 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미국이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버리고 다시 자유무역의 선봉에 서기를 바란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7-13

[박영철 국제칼럼]트럼프케어 법안은 낙태 직전인가?

“필요하다면 오바마케어를 대체 법안 없이도 바로 폐기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공화당이 7년 이상 줄기차게 국민에게 약속한 오바마케어의 폐기와 대체 법안을 포기하고, 우선 오바마케어의 폐기만 할 수 있다고 선언하여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지난주 상원 표결이 연기된 트럼프케어의 입법 전망이 한층 더 오리무중에 빠지고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오바마케어 폐기와 대체에 대한 최근 입장을 다시 점검한 다음,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잘못 알려진 신화 2개를 소개하려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댄 발즈는 1일 칼럼 ‘트럼프는 공화당의 믿을 수 있는 동지가 아니다’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트럼프의 건강 보험에 대한 입장은 수시로 바뀌어 왔다. 며칠 전에 트럼프는 우선 당장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고 시간을 두고 대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공화당 상원 원내 총무가 추진 중인 트럼프케어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트럼프케어의 입법화는 지금 매우 어려운 위기에 빠져 있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이유는 트럼프와 공화당이 지난 대선 기간 내내 건강 보험 제도에 대한 중대한 두 가지 공약을 약속했는데 이를 시행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국민이 가입할 수 있는 건강 보험제도를 만들겠다, 그리고 보험료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공약이다. 두 번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통과한 트럼프케어가 ‘쩨쩨할 정도’여서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상원에서 표결하려는 트럼프케어는 ‘매우 좋다.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했지만, 법안 표결이 전격 연기되었다. 세 번째 이유는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오바마케어 유지에 대한 선호도가 예상외로 높게 나왔지만 트럼프케어에 대해서는 비선호도가 훨씬 더 높게 나온다. 지난달 PBS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상원의 트럼프케어에 대한 찬성은 겨우 17%인데 비해 반대는 무려 55%가 넘었다. 반대로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대는 41%, 찬성은 51%로 2010년 카이저 여론조사 이후 최고로 높은 수치이다. 그런데도 대체안도 없이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려는 트럼프의 진짜 속셈은 무엇인가? 두 가지 분명하고 중대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회 지도부가 공유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8년간 ‘오바마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트럼프케어를 빙자하여 ‘슈퍼리치’와 대 기업의 조세 감면이나 감소를 시행하는 것이다.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인 펠로시의 말이다. “트럼프케어는 건강 보험 제도가 아니다. 병들고 가난한 삶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의 돈을 재벌과 부자들에 넘기는 세금 개혁이다.” 이제 건강보험에 관한 잘못된 인식, 즉 ‘신화’ 2개를 살펴보겠다. 첫 번째 잘못 알려진 신화는 “오바마케어는 수천만 명을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 보험을 사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가? 워싱턴 포스트의 ‘건강 보험’이란 기사(7월 2일)에 의하면 정말로 원하지 않는데 벌금이 무서워 오바마케어에 가입한 사람은 전체의 8%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1965년 메디케이드가 시행된 이후 2010년까지 평균 4500만명 정도가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즉 전체 인구의 30%~18%가 보험 미가입자인 셈이다. 그러다가 2014년 오바마케어 덕분에 2000만 명의 신규 보험 가입자가 발생하여 보험 미가입자 비율이 9% 선으로 내려왔다. 두 번째 잘못 알려진 신화는 “트럼프케어의 메디케이드 수혜자는 반드시 직업을 갖도록 강요하면, 연방 정부의 보험 관련 재정 적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 오바마케어의 메디케이드 수혜자 중 나이 많고 병들어 일하기 힘든 사람에게 지출하는 비중이 연방 정부의 보험 관련 적자의 60%를 차지하고, 어린이들이 총수혜자 수의 44%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직업을 갖도록 강요할 대상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현재 트럼프케어에 관한 무서운 악성 루머가 돌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10년 안에 몇백만명이 보험 가입을 못 해 죽는다고 한다. 거짓이라고 믿고 싶다. 난산 중인 트럼프케어 입법화가 좌절하기를 바란다.

2017-07-06

[박영철 국제칼럼] 파리기후협정 탈퇴는 온 지구에 터진 ‘핵폭탄’이다

지난 6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195개국이 서명한 ‘온실가스 감축’ 국제협정을 탈퇴한다는 것이다. 먼저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에 대한 미국과 해외의 반응을 짚어보고, 파리협정의 중요성을 점검한 후, 끝으로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 운동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살펴보겠다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에 대한 세계 언론의 반응은 한 마디로 “트럼프가 또 일을 저질렀구나!”라는 탄식의 목소리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차대한 4개의 반응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미국이 이제 세계적인 ‘불량국가(Rogue State)’가 된 꼴이다.” 불량국가란 미국이 북한을 욕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둘, “세계 최대 강국 미국의 ‘국제 위상’이 망가졌다.” 최근에 경제적 No. 1 위치(구매력 기준)를 중국에 넘겨준 미국이 이제 ‘지구 살리기’ 운동의 주도권을 포기한 순간이다. 셋, “미국은 기후변화 운동을 주도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데, 파리협정 탈퇴는 이 의무의 포기를 의미한다. 우리는 몇 년째 계속되는 가뭄이 지구온난화로 생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심한 가뭄으로 재산 전부인 소 12마리를 잃어버린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 말리(Mali)의 한 가축 업자가 영국 기자에 실토한 분노이다. 넷, “이건 완전히 ‘미친 짓’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이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매서운 비난은 미 국민에게 “주 정부와 합심하여”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구하자는 강력한 촉구이다. 이제 파리기후협정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짚어보자.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오는 2020년에 끝나는 교토 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하여 195개국이 서명하여 지난 2015년 11월에 발효한 국제협정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에 이 협정을 비준했다. 그러나 이제 트럼프의 탈퇴 선언으로 미국은 시리아, 니카라과에 이어 이 협약에 불참하는 세 번째 나라가 됐다. 파리협정의 목적은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섭씨 2도(화씨 3.6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것이다. 왜 파리협정의 목적이 꼭 달성되어야 하는가? 환경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가 자신의 ‘6도의 악몽’이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2도 상승하면 큰 가뭄과 대홍수가 닥치고…. 그리고 6도 상승하면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멸종하게 된다.” 물론 어떤 과학자도 지구의 평균온도가 언제,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국가가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데 반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한 대응조치를 거부한다는 사실은 극소수의 국수주의자 빼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파리협정 탈퇴 전망을 검토해 보자. 유럽연합 국가(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와 중국이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를 가장 강력히 규탄하면서 ‘녹색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심지어 중동의 산유국과 아프리카의 내륙 국가마저도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을 ‘불량국가’로 취급하며 중국 다음으로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국가로서 ‘도덕적 책임’을 피하려 한다고 매섭게 질타한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들 외국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을 미국의 ‘우월주의’로 포장한 자신의 자아 망상과 사업가의 ‘투기적 충동’의 부산물로 보며 전 세계인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국제적 ‘환경 왕따’가 될 위기에 놓여있다. 미국 안에서는 어떤가? 현재 주지사 3명, 시장 30명, 대학 총장 80여 명, 기업 100여 개가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여 트럼프 행정부와는 별도로 파리협정의 목적, 즉 온실가스 감축 달성을 위해 유엔과의 직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3일 이 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우리는 2025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 줄이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유엔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리더십은 연방 정부로부터 지방정부, 학계, 업계로 이동했다는 게 블룸버그 전 시장의 설명이다. 미국 정부는 파리협정을 탈퇴할 수 있지만, 미국인들은 계속 파리협정을 지킬 것이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6-08

[박영철 국제칼럼] ‘비정규직 제로(Zero)’와 ‘재벌개혁’의 시대가 오는가?

“국민의 87%가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고 평가한다는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국민의 절대다수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정된 ‘일자리’와 극심한 ‘소득 양극화’ 현상의 해소라고 믿는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국민의 소망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문재인 후보의 10대 대선 공약은 정치, 경제, 국방, 복지, 환경 등을 포함한다. 10대 공약의 1순위는 단연코 고용 창출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8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2순위 공약은 정치 분야의 정치 권력과 권력기관 개혁이며, 3순위 공약은 반부패·재벌 개혁이다. 오늘 칼럼은 대선 공약 1순위 일자리 창출과 3순위 재벌개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분석하려 한다.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 지난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 공사를 방문한 문 대통령의 선언이다.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비정규직 제로(Zero)’ 시대를 열겠다는 대선 공약 시행의 첫발을 뗀 셈이다. 같은 날 정일영 사장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원 1만여 명이 전부 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완수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코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문제이다. 다행히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재원 조달 문제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1위 공항’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는 공사는 개항 이후 16년간 줄곧 연 순이익 9,650억 원의 경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비정규직 전원(9924명)에게 현재의 평균 연봉 3,000만 원에서 정규직 직원의 평균 연봉 수준인 5,000만 원으로 올린다면, 필요한 추가 재원이 매해 약 1,300억 수준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공사의 현재 경영 수지 흑자가 유지된다면 추가 재원 조달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 1등 공항이란 평가 이면에는 인천 공사 공무원의 85.6%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12일 공사를 방문한 문 대통령이 뼈 아픈 진실을 밝혔다. 이제 왜 이 시점에서 ‘재벌개혁’이 필요한가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재벌 구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엄청나게 클 뿐만 아니라, 공기업이 아닌 민간 기업의 비정규직 해소를 위해서는 재벌개혁이 필수 조건이기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현재 시장의 공정한 경쟁이 사라져 중소기업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발생하는 기업 간의 양극화와 재벌의 횡포를 규제함으로써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 내내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 문 대통령은 지난주(5월 17~21일) ‘재벌의 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교수와 장하성 교수를 각각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앞으로 장하성 실장은 재벌개혁 당위성과 필요성의 논리적 틀을 짜고, 김성조 위원장은 그 큰 틀 안에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집행을 맡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사항이 있다. ‘박정희의 압축 성장’시대인 1960~70년대에 정부와의 유착과 비리의 부산물로 급조된 재벌기업이 한국의 수출과 GDP 성장에 공헌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발생한 1998년의 IMF 사태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고 있고, 청년들은 ‘평생 백수’라는 비참한 상황에 허덕이고, 박정희 신화의 일꾼들이었던 노인들은 지금 세계 1위인 빈곤율과 자살률에 허덕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한국 경제의 침몰과 양극화에 대한 재벌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위 ‘정경 유착’으로 인해 자본시장 경제의 최대 덕목인 “공정한 경쟁’이 사라지고, 재벌기업의 역동성(Dynamics)이 깨져 이제 수출과 성장의 엔진 역할이 쇠진해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장 내정 소식을 들은 김상조 위원장의 첫 성명은 다음과 같다. “(저는) 공정한 시장 경쟁을 회복하여 중소기업, 자영업, 서비스업 사업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재벌기업과 동반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정책은 일시적인 대중 영합적인 정책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이 돼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첫 야심작인 ‘비정규직 제로’와 차분한 ‘재벌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5-25

[박영철의 국제칼럼] 트럼프의 ‘분노’가 불러온 제2의 워터게이트?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란 미국의 항공엔지니어 머피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라고 언급한 일종의 확률 예측이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온 지구촌의 정치계와 카지노를 달구는 ‘뜨거운 감자’는 단연코 ‘화요일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수사국(FBI) 코미 국장 전격 해임 사건이다. 무서운 속도로 번지는 후폭풍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패닉’상태에 빠지고 탄핵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주일(5월 9일~16일)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9일(화)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코미 국장은 4년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했다. 일반적으로 FBI 국장은 정치적 독립을 지키기 위해 임기 10년이 보장되는데도 트럼프는 이 같은 불문율을 깬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해임 이유는 “그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FBI를 효율적으로 지휘할 수 없다”였다. 일종의 문책론이다. 그러나 그다음 날(10일)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가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강한 수사 의사를 표명한 것에 분노해서 그를 해임했다”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자충수’는 11일 저녁 NBC 방송 간판 앵커 레스터 홀트와의 인터뷰에서 발생했다. 첫째, 트럼프는 “(법무부 차관의) 건의에 상관없이 코미 국장을 (이미) 해임하려 마음을 먹었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로즌스타인 법무차관의 건의를 받아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고 전날 발표한 백악관의 공식 해명을 부인하고, 자신이 직접 코미의 해임을 결정했다는 얘기이다. 둘째, 트럼프는 이 인터뷰에서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본인만이 알고 있던 뜻밖의 사실을 폭로했다. 즉, 트럼프 본인이 어느 만찬에서 코미 전 국장에 “세 차례나 ‘내가 (러시아 커넥션 의혹 관련) 수사 대상이냐’라고 물었더니 코미 전 국장이 ‘당신은 수사를 받고 있지 않다’라고 답을 했다는 주장이다. NBC는 대통령이 FBI 국장에게 자신이 수사 대상이냐고 묻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위로 FBI의 범죄 수사 규정에 어긋난다고 보도했다. 자칫 ‘수사 방해’라는 의혹이 생길 수 있다. 이 방송 내용이 알려진 다음 날(12일) 민주당 진영과 법조계의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날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법무부 감찰관실에 서한을 보내 FBI의 ‘러시아 커넥션 수사’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개입이 있었는지를 공개적으로 질의하고,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20개 주 법무장관들도 같은 날 “(러시아 연계설 의혹에 대한) 독립적인 특별검사 선임만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법무부에 보냈다. 워싱턴 정가를 강타한 코미 국장의 전격 해임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신임 국장의 신속한 임명으로 이 위기 국면을 벗어나려 한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의 후임 인사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결정할 것으로 본다. 지난 15일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이 예정된 오는 19일 이전에라도 신임 국장 인선이 결정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유력한 8명 후보의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당 슈머 상원 원내 총무는 지난 15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신임 FBI 국장의 신속한 임명 저지를 선언했다. “2016년 미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는지를 수사하는 독립된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전에는 코미 전 국장의 후임자 지명을 저지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누가 FBI의 신임 국장이 되느냐가 누가 러시아 대선 개입을 수사할 특별 검사가 되느냐와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본인의 충격적인 폭로로 다시 불이 붙은 2016년 미 대선 중 ‘러시아의 선거 개입’과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당국의 연계설에 관련한 FBI 수사 또는 특별검사의 수사는 이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찻잔 속의 미풍으로 끝날 수도 있고,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헌정 위기’라는 대형 참사로 번질 수도 있다. 오늘 칼럼의 결론을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5월 16일)로 대신한다. “신임 FBI 국장은 초당적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 이름 뒤에 R(공화당)이나 D(민주당)라는 꼬리표가 붙어서는 안 된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5-18

[박영철 국제칼럼]촛불 민심이 문재인 정권에 바라는 것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5월 9일 치열한 5자 구도에서 지지율 41.1%를 얻고, 2등과의 격차를 무려 17.1%p로 벌리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19대 대선 투표일은 분명 한국 정치사에 영원히 기록될 ‘유권자 혁명’이 일어난 역사적인 날이다. 그렇다면 촛불 민심이 문재인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70여 년간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갈가리 찢긴 국민 간의 분열을 통합하라는 것이다. 좀 더 가슴에 와 닿는 감성적인 표현을 빌리면,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요즘 삶이 지옥 같은 조선 시대와 닮았다고 해 생긴 ‘헬조선’과 친구와의 관계마저 포기해야 하는 ‘7포 세대’에서 벗어나고, 상사의 눈치 보지 않고 ‘칼 퇴근’도 하고 주어진 ‘연휴’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소박하고 안정된 삶을 바란다. 물론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대통령 문재인을 기다리는 대내외 정치와 외교, 경제와 사회 현실은 절대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권력을 빼앗긴 친일세력, 유신세력, 군부독재 세력 등의 저항이 매우 극렬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 민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장 내년이나 내후년이 아니라, 향후 5년 임기 중에 다음의 4대 최우선 과제를 확고하게 그러나 차분히 시행해줄 것을 바란다. 첫째, 촛불 민심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60여 년간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의 복지화를 짓밟은 국정농단 세력을 철저히 청산해주기를 희망한다. 국내외 정치 평론가 다수는 현재 한국이란 연못은 시궁창처럼 썩은 물에 오염되어 있고 국민은 그 연못에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물고기 신세라고 비유한다.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연못 물을 정화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적폐청산위원회’는 향후 5년간 적어도 다음과 같은 8대 적폐를 깔끔히 청산해주기를 바란다. I) 박근혜 탄핵과 ‘최순실 국정농단’에 관여한 세력의 척결, ii)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영원히 묻어버리려 했던 세력, iii) 광주항쟁의 진실과 발포 명령자의 색출을 방해해온 군부 세력, iv) 이명박 전 정권의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 비리, v) 재벌기업의 정경유착 비리, vi) 사법개혁과 공수처 신설, vii) 국정교과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려는 세력, 그리고 끝으로 viii) 언론의 개혁 등이다. 물론 지난 70여 년 한국 정치를 주물러 온 수구 세력들은 이 같은 적폐청산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하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들의 반항을 단호히 처단해야 한다. 둘째, 촛불 민심은 문재인 정부에 정당 간의, 그리고 시민 간의 협치와 통합 정책을 시행하라고 요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수가 과반(150석)에 미치지 못하는 120석에 불과하여 다른 정당과의 협치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난 70여 년간 국정농단 세력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시민 간의 신뢰와 협조를 다시 복구하지 않으면 한국의 장래는 암울할 뿐이다. 셋째, 촛불 민심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외교 정책으로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요구한다. 지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9년 반 동안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거의 전쟁 촉발 직전의 위기 수준에 도달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5월 6일 광주 유세 중 다음과 같은 대북 정책의 2대 원칙을 선언했다. “앞으로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남북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 중국과 미국은 협조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넷째, 한국 경제는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에 빠져 있고 단기 GDP 성장률은 잠재성장률보다 조금 높은 위험한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복지정책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고 소득 양극화 현상은 24개국 중 17위 정도이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중 1위를 차지한다. 촛불 민심은 ‘사람다운 삶’을 보장하는 수준의 복지 정책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재벌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동반 성장’, ‘5대 포기’ 시대에서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일자리 보장을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다음 4대 과제를 반드시 성취하기 바란다. 70여 년 묵은 적폐의 대청소, 정당 간의 협치와 국민 대통합, 남북관계의 평화적인 해결, 그리고 경제 민주화 등이다.

2017-05-11

[박영철 국제칼럼] 여론조사 왜곡의 ‘6번째’ 가능성

언론 미디어가 대선에 관한 여론이나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방법은 적어도 10개가 넘는다. 지난 13일 칼럼에서 ‘여론조사 조작에 속지 않는 방법 5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오늘은 여론조사 왜곡의 ‘6번째 가능성’을 설명하려 한다. 그것은 여론조사 기관이나 그를 의뢰한 언론이 일단 시행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에 아예 발표하지 않거나, 1단 기사로 조그맣게 축소하여 뉴스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또는 인터넷 매체에 띄웠다가 즉시 삭제하는 방법 등을 말한다. 이 6번째 왜곡 가능성을 최근에 발표한 여론조사의 사례를 들어 살펴보자. KBS와 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2017대선의 첫 TV 토론(4월 13) 이후 제4차 TV 토론(4월 23일)까지 언론 미디어가 시행한 여론조사는 16개에 달한다.이들 여론조사 결과는 몇 개의 중요한 특징과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중 정치적으로 가장 의미가 큰 특징은 다자 대결(5인 또는 6인)에서 문재인이 안철수를 적어도 9.5%P~14%P라는 큰 격차로, 즉 오차범위 밖에서 ‘전부’ ‘예외 없이’ 이긴다는 사실이다. 10여 일 전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기거나 동률이었던 경우와는 엄청나게 다르다. 따라서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양강구도가 이처럼 급속히 무너지는 조짐은 당연히 언론의 큰 관심을 끌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대선의 최종 결과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가? 거의 모든 인터넷 매체가 이 중대한 사실을 당일이나 그다음 날까지 보도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 왜곡의 ‘6번째’ 가능성’이다. 이와 함께 언론 미디어가 대선과 관련하여 의도적인 ‘편파보도’와 의도하지 않은 ‘오보’를 발표할 가능성을 짚어보자. 가장 대표적인 ‘편파적인’ 경우란 어떤 특정 후보에 대한 보도를 의도적으로 불리하게 또는 유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지난 4월 21일 대선 미디어 감시연대가 한 달(3월 20~4월 15) 동안 6개의 종합일간지와 방송 7개사(지상파 3개와 종편 4개)의 보도 제목을 모니터링 한 결과를 발표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6개 신문 종합일간지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제목은 19개, 불리한 제목은 62개로 총점이 마이너스(-) 43점이고, 국민의당에 유리한 제목은 36개, 불리한 제목은 15개로 총점이 플러스(+) 21점이 나왔다. 즉 (-)43점 대 (+)21점이다. 방송 7개사의 경우는 이 격차가 더 심하게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불리한 보도가 169건, 유리한 보도가 7건이어서 마이너스(-) 162점, 국민의당의 경우 불리한 보도가 66건, 유리한 보도가 21건으로 마이너스(-) 45점이다. 즉 (-)162점 대 (-)45점이다. 매우 심각한 의도적인 왜곡이라 하겠다. 이제 의도하지 않은 가장 대표적인 ‘오보’인 JTBC의 손석희 앵커 경우를 보자. 지난 19일 방송된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통해 손석희 앵커는 “여론조사와 관련해서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날(18일) 나간 ‘중도층 표심’ 관련 보도 중 그래프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 ‘그래프 오류’ 내용은 이랬다. “지난주 갤럽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자신이 진보라고 말한 응답자들로부터 48%의 지지를 받았고, 안철수 후보는 보수라고 말한 응답자들로부터 66%의 지지를 받았다고 나갔습니다. 그래픽도 그렇게 처리됐습니다. 그런데 실제 조사 결과는 문재인 후보가 진보층으로부터 66%의 지지를 받았고, 안철수 후보는 보수층으로부터 48%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 국민은 여론조사의 왜곡 여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는 튼튼한 실력을 갖춘 ‘깨어있는’ 유권자임을 믿는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4-27

[박영철 국제칼럼] 위기에 빠진 트럼프 취임100일의 성과

“현 국제정세는 어느 순간 지역 전쟁이 돌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고, 미 국내 정치는 무서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 이그나티우스가 지난주에 쓴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여론조사의 예측을 뒤집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 성과는 과연 어떤가? 한마디로 최악이다. 취임 직후부터 역대 최저인 48% 지지율로 시작하여 4월 초에는 무려 37%까지 급락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비슷한 시기에 각각 67%와 62%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에 발생한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난 3월 24일 트럼프와 공화당이 자신들의 최우선 선거 공약인 오바마케어를 대체하는 ‘트럼프케어’ 법안(미국 보건법=AHCA)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철회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지난 대선 기간 중 러시아의 푸틴이 트럼프 진영을 돕기 위해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첫째, 공화당이 지난 3월 24일 왜 하원에 상정하려던 ‘트럼프케어’를 철회했는지를 살펴보자. 지난 수년간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주창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 행정명령으로 ‘오바마케어 폐지’를 지시했다. 그런데 이처럼 최우선 입법 과제인 ‘트럼프케어’법안이 전격적으로 철회된 것은 민주당 의원 전부와 공화당 강경 보수파 일부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케어’ 법안 상정에 반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유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초에 발표된 의회예산국(CBO)의 보고서는 만약 트럼프케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돈이 없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무보험자수가 2016년에 적어도 2400만 명, 내년 한 해에만도 1400만 명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것이 민주당이 반대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공화당의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트럼프케어 대체 법안은 오바마케어의 핵심 조항을 완전히 폐지하지 못한 ‘가벼운’ 오바마케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시 철저히 수정해 공화당다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반대했다. 트럼프는 이번에 좌절된 트럼프케어 법안의 재상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민주당과 협상도 하겠다고 선언하고, 동시에 공화당의 강경파에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심판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케어의 재상정은 현재로써는 그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확실한 것은 이 법안의 의회 상정 좌절이 향후 트럼프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혀 그의 공약(Agenda)시행에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세제개혁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 은행 규제법률 완화와 중국, 멕시코 등과의 국제교역 재협상 등이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제 두 번째 ‘뜨거운 감자’를 살펴보자. 러시아가 지난 대선 중 트럼프 진영을 돕기 위해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눈덩이처럼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연방수사국(FBI)과 의회가 본격적으로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민주당 상원의원 마크 워너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외부 적국이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경사인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여 자기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려 한 파괴적 행위이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수사 자체를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조작하는 ‘마녀사냥’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3월 30일 폭탄 발언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의하면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을 수사 중인 의회와 연방수사국에 나와 증언하겠다며 그 대가로 기소면책(Immunity)을 요구했다고 한다. 플린의 기소면책 요구에 접한 연방수사국과 의회는 일단 신중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플린이 증언하겠다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전에는 기소면책 특권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깊은 안갯속에 빠진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이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선 공약 실행에 태풍과 같은 파괴력을 가할 수도 있어 워싱턴 정가가 숨을 죽이고 있다. “미국을 다시 강대국으로!”라는 구호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너무나 초라하고 혼란스런 취임 100일 성적표이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4-06

[박영철 국제칼럼] 이제 ‘시민 혁명’의 시작이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한국 시간),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선고문 낭독을 시작한지 겨우 20여분이 지난 시점에서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헌재 재판관 8인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뤄진 피청구인 박근혜의 파면 선고는 박근혜 한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와 5000만 국민의 운명이 갈리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은 지난 133일 동안 서울 광화문 광장에 연인원 1600만이 참가한 촛불집회가 만들어낸 시민 혁명의 막을 올리는 엄중한 순간에 와 있다. 역사적인 박근혜 탄핵 인용 선고에 관련된 다음 4개의 중대한 사안을 두 차례로 나눠 검토하려 한다. 1) 헌재의 탄핵 인용 선고는 과연 누가 일궈냈는가? 2) 지난 3월 12일 삼성동 사저로 이사하면서 헌재 파면 선고에 ‘불복종’ 선언을 한 박근혜 자연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3) 이제 57일 안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바라는 각 정당의 시대 정신과 핵심 공약은 무엇이 돼야 하나? 4) 중장기 관점에서 차기 정권이 반드시 시행해야 할 개혁 과제는 무엇인가? 오늘은 첫 번과 두 번째 사안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 한국 헌정 사상 처음인 대통령 탄핵 선고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성적표를 제시한다. A+: 여소야대의 국회와 촛불민심, A: 8인 헌재와 특검, B+:JTBC와 손석희,김어준(뉴스공장/파파이스), B: 한겨레,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의 집요한 추적, F: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과 대리인, 태극기 집회, 극우 친박 국회의원 적지 않은 독자가 위의 성적표에서 여소야대의 국회가 촛불민심과 함께 A+ 점수를 받은 사실에 의아해할 줄 안다. 왜냐하면 최근 국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헌재의 탄핵 인용을 끌어낸 일등공신은 촛불민심뿐만 아니라, 지난 12월9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낸 여소야대의 국회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각 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평가를 듣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중요한지를 다시금 인식시키는 귀중한 사례가 된다.그리고 삼권 분립 제도의 보석인 ‘견제와 균형’ 역할이 제대로 유효하게 작동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F 학점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대리인들의 막말과 무례함은 국민을 분노케 했을뿐 아니라 헌재 재판관의 선고 결정에도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들의 지나친 선동은 내란죄 다음으로 중형이 가해지는 국내 소요죄에 해당한다고 한다. F 점수를 받은 이유이다. 둘째, 지난 3월 12일 삼성동 사저로 이사하면서 헌재의 파면 선고에 ‘불복’을 선언한 박근혜 자연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짚어보자. 헌재의 파면선고 다음날 국민의 89%는 결과를 수용하겠다며 승복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파면 선고를 받은 당사자인 박근혜 본인은 지난 일요일 삼성동 사저 앞에서 헌재 판결에 대해 승복한다는 메시지 대신 민경욱 전 대변인을 통해 “이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입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를 낭독하도록 했다. 모든 언론은 즉각적으로 “이것은 분명한 헌재 판결 불복 선언이다. 특검이 만천하에 다 밝힌 진실을 어떻게 더 밝힐 것인가?”라며 박근혜를 매섭게 질타하고, 야당들은 “검찰은 당장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박근혜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온 국민은 이번 헌재 파면의 경우에는 세월호 당시 보인 눈물마저 흘리지 않고 대신 승리자처럼 환한 웃음을 연출한 박근혜를 당장 수사하여 구속하라는 대형 촛불집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이제 공은 다시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검찰은 자연인 박근혜 수사를 이달 안에 끝낸다고 한다. 어떤 결정이 되든 막 시작한 대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헌법을 짓밟고 국정농단을 자행한 박근혜의 탄핵이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명시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다시 복원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3-16

[국제칼럼] 한국의 노인빈곤율

“한국의 70세 이상 노인들은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선진국 중 가장 가난하게 살고, 이들의 자살률은 선진국 중 제일 높다.” 어느 한국 주류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이 제목을 읽는 순간 온 가슴에 부끄러움과 연민의 정이 솟아 뭉클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금상황 한 눈에’라는 보고서(2015년 3월)에 의하면 “한 국가의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그 나라 중간 소득의 50% 이하의 소득을 가지고 사는 노인의 비율”이라고 정의한다.” 많은 나라의 경우 은퇴한 노인들이 그 나라의 중간 소득보다 훨씬 높은 소득(국민연금+노동봉급+개인연금+금융소득)으로 산다. 도대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어느 정도인가? OECD의 보고서(2014년)에 의하면 한국의 65세 노인빈곤율은 무려 50%로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제일 높다. 즉 한국의 65세 노인층의 절반이 중간 소득의 50%보다 낮은 소득으로 산다는 뜻이다. 다른 OECD 회원국의 노인 빈곤율은 어떤가? 비교하기조차 너무 부끄럽고 가슴이 쓰라리다. OECD 평균 빈곤율은 겨우 13%이고, 프랑스는 3.8%, 네덜란드는 2%이다. 비교적 노인빈곤율이 높은 미국도 22%, 일본도 19%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이처럼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한국 정부도 인정하는 이유가 있다. 노인의 전체 소득 중 국민연금의 비중이 회원국 중 제일 낮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층의 전체 소득 중 ‘국민연금’의 비율이 회원국 중 칠레(7%) 다음으로 가장 낮은 16%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37%, 일본은 47%, 핀란드는 80%, 벨기에는 81%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 선진국 중 가장 복지 정책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정부가 부패와 재벌과의 정경유착으로 재분배와 복지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한국의 노인층이 선진국 중 늙어서도 일을 가장 오래 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쥐꼬리만한 소득의 무려 65%가 아직도 노동 봉급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책임감과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노동 봉급이 전체 소득의 32%, 벨기에 12%, 핀란드 11%이다. 이처럼 높은 빈곤율은 불행히도 한국 노인들의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난다. OECD 보고서에 의하면 70세 이상의 노인자살률이 한국의 경우 10만 명당 116명으로 조사 대상 60개국 중 가장 높다. 프랑스는 27명, 미국은 16명, 노르웨이는 11명, 쿠웨이트는 1명이다. 이들 65~70세 이상의 한국 노인들은 과연 누구인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국민의 정치의식에 관한 여론 조사에서 이들 노인이 압도적으로 여당 지지 성향을 보인다고 해서, 젊은층 일부가 이들을 ‘꼴통보수’라며 극단적으로 멸시하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아주 잘못된 노인층에 대한 몰이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노인층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들을 극단적인 세 부류로 나누어야 한다. 한 부류는 독재 정권 치하에서 출세하고 치부한 정치인과 검찰, 비리에 현혹된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정경유착의 최대 수혜자인 재벌 기업이다. 다른 한 부류는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싸운 민주화 운동 지지자이다. 세 번째 부류가 ‘독재의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줄 모르는 무조건 순종파이다. 그러면 이 세 번째 노인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들을 “한국의 60~70년대 압축 경제성장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도 그 이후 정부로부터 ‘나 몰라라’고 큰 버림을 받은 비참한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이 노인층이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나? 이들이 바로 ‘4월 혁명의 주체’, ‘독일 간호사와 광부 파견’, ‘월남파병’, ‘중동 건설현장의 역군’들이었고, 가발과 신발 수출로 외화를 벌어온 중소기업 사업가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처럼 국가에 엄청난 공헌을 한 이들에게 어떤 대우와 보상을 해주고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층은 한국의 젊은 2030세대와 함께 무능과 부패의 온실인 정부와 재벌이 만든 ‘헬조선’의 희생자들이다. 따라서 이 노인들은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우리 부모님들이 아닐까?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2-23

[국제칼럼] 한국 청년실업률, 미국 추월

본 국제칼럼은 지난 12월 8일~22일 3회에 걸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만신창이가 된 한국 경제’라는 주제로 위기의 한국 경제를 검토해 보았다. 이번에는 두 차례에 걸쳐 한국 경제에서 ‘헬조선’과 높은 청년 실업률, 노인 빈곤과 자살률, 취약한 사회자본과 낮은 정부 신뢰도 등 시급히 개선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점을 짚어본다. 또 올 봄에 있을 가능성이 큰 대선에서 ‘한국 경제의 대청소’라는 경제 공약이 왜 최대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첫째로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률을 살펴 보자. 그러기 위해 우선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의 2030세대를 극적으로 묘사하는 ‘헬조선’과 ‘7포세대’라는 인터넷 신조어를 검색해보자. ‘헬조선’이란 단어는 2010년에 생긴 조어로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3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5포세대는 거기에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7포세대는 거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말이다. 왜 한국의 청년은 7포세대가 되었는가? 그 이유 하나를 대라고 하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청년실업률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한국 청년실업률이 과연 사회의 무서운 ‘독소’인가? 분명 그렇다. 첫째, 한국 청년실업률이 최근 들어 갑자기 더 악화하는 안타까운 현상 때문이다. 지난 2월 12일에 발표한 경제협력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무려 18.4%였던 미국 청년실업률은 2016년 10.4%로 하락한 반면, 한국 청년실업률은 지난해에 오히려 10.7%로 상승하여 16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추월했다는 부끄러운 소식이다. 미국과 한국 청년 실업률 2005 2010 2013 2015 2016 미국 11.3 18.4 15.5 16.6 10.4 한국 10.2 9.8 9.3 10.5 10.7 둘째, 핵심인구실업률(30~54세) 대비 한국 청년실업률(15~29세)이 OECD 선진국 중 가장 급속도로 악화하는 현상이다. 2015년 이 비율이 한국의 경우 3.51배이다. 즉 장년실업자 1명에 비해 청년실업자가 3.5명으로, 청년층 실업률이 국가 평균 실업률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다. 이에 반하여 독일의 경우 이 비율이 1.58이고 일본의 경우 이 비율이 2.35에 불과하다. 참으로 사회적으로 무섭고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새싹이 나기도 전에 꺾이는 슬픈 현상이기 때문이다. 셋째,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이 비교표에 사용한 수치가 한국 정부가 발표한 ‘공식’ 청년실업률이란 사실이다. 왜냐하면 민간 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체감’ 청년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게 올라간다. 최근 예를 들어보자. 2016년 6월 현대경제연구소의 고용 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 ‘체감’ 청년실업자 수는 무려 179만명으로 정부의 ‘공식’ 청년실업자수 34만5000명의 5배 이상이었다. 따라서 체감 실업률은 34.2%이고 공식 실업률은 10.7%였다. 왜 이 같은 극단적인 차이가 발생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공식’ 청년실업자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현대경제연구원의 ‘체감’ 청년실업자는 정부의 공식 실업자에 아르바이트생+취업준비생+비자발적 비정규직(45만 8000명)+그냥 쉬고 있는 청년(19만7000명)을 추가한 수치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실패의 근본 원인은 크게 보면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의 실패이다.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구호는 자긍심의 발로이지만,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란 구호는 취업 전선에 선 청년들에게는 ‘일자리 상승 사다리’의 걷어차기를 의미한다. 또 하나는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본 기업의 노동 수요와 대학의 공급 불일치(Mismatch)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제의 경쟁력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력을 요구하는 기업과 이 같은 노동력을 창출하는 데 실패한 대학 교육 간의 불협화음이 나은 처참한 결과가 바로 높은 청년실업률로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정부는 과감한 구조적 변화를 통한 청년고용정책을 긴급히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정책 도입도 이런 정책 패러다임 변화의 산물로서만 가능하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2-16

[박영철 국제칼럼] 트럼프의 취임사와 국정과제

“트럼프가 취임 연설에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우선할 것이라고 천명함에 따라 미국 동맹국들에게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이 되었다” (BBC) 지난 20일 미국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트럼프의 취임연설이 있었고, 같은 날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 시행할 외교와 내치에 관련한 6대 국정기조가 공개되었다. 우선 트럼프의 취임 연설에 관한 미국 내외의 대표적인 반응을 보자. 이들 반응은 일반적으로 매우 비우호적이며,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향후 정치와 경제 전망에 대해 걱정과 불안에 싸인 분위기이다. “트럼프의 취임연설은 미 국민 모두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자들만을 겨냥한 메시지이다.”(BBC), “이념 없는 정치, 미 위험하게 할 것이다. 동맹국을 자극하는 발언 그만해야!”(일본 언론), “역사상 가장 위험한 국수주의의 발상 중 하나이다.”(WSJ) 트럼프의 취임연설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위에서 본 것처럼 이토록 비판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워싱턴 칼럼니스트 댄 발즈는”말로 당선된 트럼프는 자칫 행동과의 상충에 직면할 수 있다”라는 일요 특집 기사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인 답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취임연설의 단골메뉴인 국민의 대통합과 결속에 대한 언급이 없고, 아직도 대선 후보 때처럼 자신의 지지자들 분노와 좌절감에 호소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 간의 분열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세계의 지속적인 평화에 대한 호소 대신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전통적인 동맹국과의 연대와 공조를 해칠 수 있다. 셋째, 미국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매우 우울한 전망을 묘사한 후 이를 해결할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기보다 자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오만과 자아 망상에 빠진 황당한 약속을 남발한다. 넷째,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입법 과정과 행정정책 수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대통령으로서 절체절명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의회와의 공조 대신에 워싱턴의 엘리트 정가를 맹비난한다. 선거 때 기존 정가의 부패와 무능을 척결한다고 약속한 소위 ‘Drain the Swamp(시궁창을 깨끗이 청소하겠다)’의 재탕이지만 이 같은 대중 영합적인 접근법으로는 대통령으로서의 중대한 외교와 내치 정책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제 트럼프의 백악관이 공개한 6대 국정기조의 내용을 분석하고 평가해 보자. ①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핵심 정책은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에너지 생산량을 증가하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중동 산유국과의 충돌이 예상되고, 지구 온난화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② 미국 우선 외교정책-‘힘을 통한 평화’가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이다. 미군을 재건하고 강화하여 ‘군사적 헤게모니’를,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찾아오고, 이슬람 국가의 국제 테러리스트를 소탕한다. ③ 일자리 회복과 성장-다음 3가지 정책이 핵심이다. 하나, 사회간접자본에 대대적인 투자를 통하여 10년 동안 25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둘, 연4%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한다. 셋, 세율을 낮추고 세법은 단순화하는, 개인과 기업을 위한 세제 개혁을 단행한다 ④ 미군 재건-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최첨단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을 추진한다. ⑤ 법질서 구축-불법이민자를 추방하고, 국경에 불법이민의 입국을 방지하는 장벽을 구축한다. 그리고 거리에서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고, 수정헌법 제2조에 명시된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한다. ⑥ 모든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전통적인 자유무역주의보다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을 선호한다. 이 같은 무역정책의 전환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즉시 행정명령을 통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TTP) 협정을 폐기하고 북미자유무역(NAFTA)의 재협상을 추진한다.그리고 기존 무역협정의 위반사례를 철저히 조사하여 모든 위반 국가에 ‘철퇴’를 가한다. 위에 언급한 트럼프 행정부의 6대 우선 국정과제에 대한 세계 각국 정치 경제 전문가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특히 무조건 ‘미국 우선주의’가 전통적 동맹국과의 긴밀한 동조와 협력에 걸림돌이 될 개연성이 크다. 또 다른 나라들도’자국 이익우선’ 주의를 들고 나오면 국제적 평화가 흔들리고 국지적 전쟁 발발 위험도 커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강력히 천명함으로써 온 세계가 불안과 걱정에 빠지고 있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1-26

[박영철 국제칼럼] 트럼프의 ‘무역전쟁’ 선언

“만약 트럼프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 전쟁을 시작하는 경우 세계 경제는 다시 심각한 침체에 빠질 확률이 높다.” 위의 CNN 기사 제목처럼 미 언론의 절대다수가 트럼프가 선언한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침체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전망한다. 그런데도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1월 12일에도 중국과의 엄청난 경상 수지 적자를 개선하고 중국이 뺏어간 미국 제조업 고용을 되찾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한판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주창하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의 핵심적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 방안이 무엇일까? 우선 트럼프가 주장하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미국 총 적자의 50%에 가까운 약 3천억달러(2016년 1월~10월)다. 다시 말하면 중국이 미국을 강간(raping)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중국은 싼값의 상품을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수입품에 35%~45% 정도의 고율 관세(Tariff)를 부과해야 한다. 셋째,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여 대미 수출을 늘리고 있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규정하여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 넷째. 중국은 미국의 지적 재산을 대대적으로 도둑질한다. 다섯째, 중국은 미국 제조업 고용을 빼앗아 간다. 트럼프의 이 같은 주장을 검토해 보자. 첫째,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강간’에 비유한 것은 ‘비경제적’ 논리이다. 왜냐하면 이런 대규모 흑자를 발생한 요인이 환율조작이나 덤핑이 아니고, 중국의 낮은 임금과 높은 생산성의 조합인 ‘국제 경쟁력’에 의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적인 무역 규범을 위반하여 발생한 무역 흑자가 아니란 뜻이다. 둘째.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하면 지난 4, 5년간 중국의 환율은 ‘적정 수준’이었다고 한다. 즉 중국이 환율 조작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셋째, 중국이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뺏어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 제조업 기업들이 미국을 떠났기 때문에 실업자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미국 다국적 기업들이 실존적 목표인 이윤 추구를 위해 다른 나라에 진출하여 실업자가 생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제 왜 중국이 트럼프의 ‘무역 전쟁’ 선포를 무서워하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워싱턴 포스트의 외교정책 칼럼니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중국이 트럼프를 환영하는 이유’라는 칼럼(1월 13일)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이 오랜만에 중국에 발생한 최고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결론을 냈을까? 첫째, 중국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주창하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실질적인 내용이 텅 빈, 대선기간 중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 구호 정도로 간주한다. 예 하나만 들어보자. 중국이 미국 제조업 고용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이윤 창출을 위해 중국에 진출한다. 따라서 미 기업들은 만약 중국과 무역 전쟁이 나면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보다 임금이 더 싼 방글라데시나 베트남으로 이전한다. 둘째, 중장기적 관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만약 미국이 트럼프의 주장대로 보호무역주의로 전환한다면, 그래서 미국의 전통인 자유무역 협정,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7년여나 공들여온 환태평양동반자(TPP) 협정을 폐기한다면, ‘미국 경제 성장 패턴’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세계 교역을 이끌어갈 주도권을 중국에 넘기게 된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그런 경우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 교역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셋째, 트럼프의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에 바탕을 둔 무역 전쟁은 미국과 세계 경제에 새로운 침체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 따라서 GDP 연성장율 4%~6%를 약속한 트럼프가 결코 이런 모험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넷째,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상원과 하원,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금융계와 국제 다국적기업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중국친화파들과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의 참모진도 무역 전쟁에 반대한다. 다섯째, 중국은 만약 트럼프가 중국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 ‘비관세 장벽’을 이용한 수 많은 보복 수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 농산물과 전투기의 수입에 대한 까다로운 수입 규제를 강화한다. 결론을 말씀 드리면 중국은 트럼프의 ‘무역 전쟁’ 허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로 인해 찾아올 기회를 극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박영철/전 세계은행 경제학자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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